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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운영위원 -중앙일보> 삶의향기_ 아아, 나도 늙어가고 있다

글쓴이 : 청연 날짜 : 2013-06-14 (금) 16:35 조회 : 2363

[삶의 향기] 아아, 나도 늙어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3.06.11 00:36 / 수정 2013.06.11 00:36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아버님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매일 아침 현관에 울려 퍼지는 소리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출근길에는 온 식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구두끈을 맨다. 가족들이 귀찮아하든 불만이든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귀가할 때도 비슷하다.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면 반드시 벨을 울려 집안 식구들의 인사 속에 들어선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마초적이거나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사로운 얘기라서 뭐하지만 우리 집은 비교적 민주적이다. 집안일은 제법 합리적으로 영역이 나눠져 있다. 식사 준비는 아내 몫이지만 대부분의 설거지는 당연히 내가 한다. 주말이 아니라 매일 한다. 하루 걸러 하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배출도 나의 몫이다. 딸아이의 몫은 화장실이다. 요즈음 같은 여름철에는 음식물이 가장 힘들다. 수거통 근처만 가도 악취가 진동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청소차가 떠난 직후인 이른 새벽 시간을 이용한다. 게다가 가끔 생선가시에 비닐봉지가 찢겨질 경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아파트 경비 아저씨다. 그는 늘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아득한 시절,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행동은 아버지의 저녁밥에 대한 공경이었다. 겨울날, 아버지가 늦는 날이면 어머니는 밥을 담은 놋그릇을 깨끗한 면수건으로 서너 번 감싼 뒤 장롱 이불 속이나 따뜻한 아랫목에 깊숙이 묻어두셨다. 식사를 하고 오시든,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드시든 그것은 아예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는 나에게는 존경은커녕 불만의 대상이었다. 무심하고도 무뚝뚝한 아버지에게는 집안일도 완전 남의 일이었고 온갖 잡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은 더욱 나에게 경이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그 같은 마음 씀씀이가 내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나 보다. 나는 그런 어머니로부터 가족 간에도 최소한의 존경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배운 노래는 ‘꽃밭에서’였다. 하루 고작 세 번, 신작로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시골 버스가 다니던 시절, 마초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는 밤이 이슥해지면 취학 전 어린 삼형제에게 하모니카를 불어가며 이 노래를 가르쳤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날 때는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아랫목에 고이 모셔진 아버지 놋 밥그릇의 온기를 발가락으로 느끼며 어린 생명들은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하나의 거룩한 종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았나 보다. 결혼을 앞둔 내게 어머니는 당부하셨다. 어떤 경우에도 집안일은 반반씩 나눠 해야 한다고. 당근! 그래서 지금과 같은 집안일 떠맡기는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결혼 초, 그 시절 흔치 않았던 수입 전기드릴, 톱 등등이 가득한 공구통을 사들고 온 나를 보고 놀라던 아내의 얼굴이 지금도 선연하다.
 그제 오월에 고향집의 오래된 싱크대를 바꿔 드렸다. 지난 설날 총대를 멘 설거지가 계기가 된다. 오랜 세월 같이한 싱크대는 남루했다. 내친김에 세면기 등 화장실 집기도 좋다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로 몽땅 바꿔 드렸다. 여든이 가까우신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반대는 완강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반대하는 것을 거의 우격다짐으로 바꿔 드렸다. 공사가 끝난 뒤 집을 나서는 일요일 오후, 뜨락에 무더기로 핀 꽃을 발견했다. ‘꽃밭에서’를 어머니에게 배우던 까마득한 유년 시절부터 봐왔던 낯익은 꽃이다. 그날, 어머니가 알려주기 전에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꽃이 무슨 꽃인 줄 몰랐다. 시골 옛집 뜨락에 풍성했던 작약꽃이었다. 골목길을 돌아서며 손을 흔드는 쇠약해진 어머니의 얼굴에 한순간 풍성한 작약꽃이 겹쳐져 보인다. 아아, 나도 늙어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