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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운영위원-중앙일보> [삶의 향기]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은 없다

글쓴이 : 청연 날짜 : 2013-11-15 (금) 10:12 조회 : 2349

[삶의 향기]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3.11.05 00:28 / 수정 2013.11.05 00:28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언론학
 
 
양말과 알전구, 양말과 필라멘트가 끊어진 백열등 알전구 간 무슨 함수관계가 있을까. 지금 사람들이 몇 날 며칠 생각해 봐도 풀기 어려운 고난도의 방정식임에는 틀림없겠다. 그러나 이 동떨어진 두 가지 물건을 상상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옛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잠시 까마득한 유년시대로 돌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처와는 달리 1970년대 내가 살던 산골만 하더라도 필라멘트가 끊어진 알전구는 신줏단지 같은 귀중품이었다. 알전구가 요긴하게 쓰인 곳은 해어진 양말 꿰매기였다. 지금에야 면양말에다 고급 양모 양말까지 넘치지만, 그 시절 양말은 귀했다. 잡아당기면 먼지까지 풀풀 나는 신축성 있던 나일론 양말은 한겨울 언 발을 녹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조악한 품질로 며칠만 신고 뛰어다니면 여지없이 해어져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났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알전구를 양말 속에 넣고 남포등을 밝혀가며 양말을 꿰매곤 했다. 그 어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끊어진 필라멘트가 들려주는 “사르릉”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린 생명은 스르르 잠들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풍요로운 지금 시대에는 상상조차 힘들겠지만 그 시절을 함께한 기성세대들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몹시 추웠다. 특히 발이 몹시 시렸다. 추운 겨울 아침이면 어머니는 부엌 솥뚜껑 위에다 학교 가는 누나와 나의 신발을 올려놓고 데워주셨다. 급할 때에는 부엌 아궁이에 남은 장작불 가까이에 두고 데웠다. 신발이 데워지면서 진동하는 오묘한 냄새가 코끝에 아릴 때쯤 신발을 신었고, 꿰맨 양말 속 새끼발가락까지 전해 오는 따스함이 그리도 좋았다. 방한복은 물론, 장갑도 털모자도 없었던 시절, 어머니가 데워준 따뜻한 신발은 어린 나의 마음까지 짠하게 데워주었다. 모두가 어려웠고 곤고했던 시절, 그땐 그랬다.

 학교 가는 길은 추웠다. 난방 지원이 전혀 안 되던 70년대 산골학교,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담임교사는 각자 집에서 장작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당부하셨다. 초등 1년 시절, 커다란 장작을 새끼줄에 묶어 강아지 끌듯 질질 끌며 산 넘고 물 건너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그것들을 모아 무쇠 난로에 넣고 불을 지폈다. 매캐한 연기가 잦아들고 따뜻한 온기가 교실을 채울 즈음 서너 명의 아이가 전교에 하나뿐인 풍금을 수배해 교단 앞으로 가져왔다. 그때쯤이면 선생님은 풍금을 두드리며 노래를 가르쳤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병아리떼 같은 초등 1년이 부르는 노래는 차가운 겨울 하늘로 퍼져 하얀 낮달이 되었다. 추운 날씨, 손이 시려 글쓰기 어려운 사정을 배려한 선생님의 음악교육이었다.
 지난겨울, 나는 놀라움 속에 알전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느 미국인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집에 들어서 소파에 앉으려는데 양말과 알전구를 담은 바구니가 거실 피아노 옆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알전구는 그 집 딸의 해어진 양말 속에 삐쭉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 알전구를 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미국에서, 그것도 상류 집안에서 알전구로 양말을 깁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알전구의 시대도 가고 있다. 내년부터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백열 알전구의 생산 및 수입, 판매가 전면 중단된다고 한다. 알전구의 퇴장은 한 시대가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알전구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올 한 해도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겨울은 너무 빨리 오고 있으며 그런 11월은 늘 무언가 허전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11월에는 묘한 냄새가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서둘러 떠나는 세월에 대한 미련의 냄새다. 알전구에 양말을 넣고 흐린 등불 아래 바늘귀를 더듬던 어머니도 이제 많이 늙으셨고, 그 불빛 아래 잠들던 어린 생명의 귀밑에도 서리가 내리고 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은 세월 앞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