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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모델] 중요한 건 참여다

글쓴이 : 송태경 날짜 : 2014-06-11 (수) 11:07 조회 : 2117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우리가 할 일을 감추지 않았고, 우리가 할 모든 것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고, 그들은 지금 그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나치-로 인해 억압 받고 고통 받으며 상처 입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이 갖는 느낌과 감정을 대중언론의 달인이자 언론플레이의 선구자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일기에 적어 놓은 말이다.

정치에서, 언론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국민들과 앞으로의 시대에서의 시민들이 가장 기억해야 할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줌의 인간들이고, 그 중에서도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상을 움직이며 인류가 나아갈 길과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오직 박애주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선인들만이 이렇게 세상을 움직이지 않고 악인들 역시 세상을 움직이고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러한 해악에 대해 인류는 폭군을 끌어내리고 독재자를 쫓아냈으며 시민들이 가장 바라는 인물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만들어나가도록 투표와 선거라는 제도를 창안했다.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라도 처음과 동시에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있고, 한 번의 작은 선택이라도 갈수록 커지어 모든 것을 뒤바꾸는 경우가 있다.

선거와 투표란 바로 후자에 속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평생을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는 있어도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삶의 기쁨을 찾지 않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나를 정하지 않았으며, 내가 걸어갈 나의 길 역시 결정짓지 않았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성공하고 성공하지 않을 것인지, 무엇이 의미 있고 의미 있지 않은지를 택하지 않으며, 이러한 나의 선택이 내가 평생을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바로 하여 나를 자각하고, 나는 곧 행동으로 들어가 웹서핑을 통해 한국청년유권자연맹에서 주최하는 청년이 바라는 지방선거 모델이란 활동을 알게 되고 신청하게 됐다.

수도권에서 하는 활동이었고 나는 지방에서 살지만, 이를 위한 비용을 소모가 아닌 투자로 보아, 문제에서 기회를 보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할 수 있다 대답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투표가 국민으로서 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할 지도자를 뽑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국민은 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지도자를 뽑겠으나 대충 친한 아무개를 뽑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대충 친한 아무개를 뽑는 일을 그는 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과 결정으로, 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OT는 국회의사당에서 했다. 지방에서 올라왔기에 과연 늦었지만 실질적인 문제점은 없었다. 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짝을 정해 짝을 정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그 짝이 정해진 짝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남을 소개하던 도중 40살에 대구 시장이 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는 나보다도 먼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간단한 소개가 끝난 후 국회의원 후보님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처음에 사람의 삶은 4가지로 나뉜다 하셨다.

처음에도 잘 살고 나중에도 잘 사는 사람.

처음에는 잘 살지만 나중에는 못 사는 사람.

처음에는 못 살지만 나중에는 잘 사는 사람.

처음에도 못 살고 나중에도 못 사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에는 한 가지 삶이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했다.

대학생들로 구성 된 우리들을 보며 촛불시위를 한 자신의 대학시절을 말씀하시고, 1억을 모으는 게 꿈이었던 대학시절의 꿈을 말씀하셨다. 또한 한 번 선거활동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국회의원보다는 광역단체장이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세월호에 관하여 우리들이 차마 믿지 못할 이야기가 국회에서 떠돈다는 말씀도 하셨다.

이러기에 권력이란 나뉠수록 좋다며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한탄하셨다.

아무래도 자신이 정치권에서 일하시다 보니 언론이 정치를 움직이려 한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마지막 질문하는 과정에서 한 기자님께서 권력이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 말씀하시니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그 기자님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이러한 사회를 살아간다는 회의감과 함께 기자님께서 이후로는 보이시지 않아 말 한 번 나누지 못했다.

OT는 이렇게 끝나고, 뒤를 이은 활동들이 있었다. 후보자 캠프에 직접 방문하는 일이 있었고, 후보자와 함께하는 타운홀 미팅이 있었다.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캠페인이 있었다. 후보자 캠프를 방문하는 날짜에 나의 일정이 있어 선택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보다 중요한가를 생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후에 깨달아 크게 후회했다.

지방에서 서울, 인천쪽을 가는 일은 과연 힘들었다. 거리가 멀다보니 기본적으로 고속도로에서만 2시간이 소요됐고, 출발지점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착지점으로 가는 시간을 합하면 하루에 기본 4시간 이상은 길 위에서 소요됐다.

교통 체증이 한 번 시작되면 시간은 더욱 늘어났으며, 밤늦게 돌아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고속버스에서 수면을 취해 체력을 비축했으나 몸이 피로해 입이 헐고 입술이 터졌다.

그래도 나름의 보람이 있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때가 있었다. 40살에 대구 시장을 할 계획이라는 분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40살에 시장을 하고 난 후 귀농을 하겠다 말씀하셨는데, 무언가를 이루고 난 이후에는 여유를 느끼며 삶을 살고 싶단 말씀을 하셨다.

대학 1학년 때는 놀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인천 타운홀 미팅에 갔을 때 나 밖에 메모를 하지 않는 광경을 봤다. 그곳에서 핸드폰으로 카톡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 놓이면서 나는 짜증과 화를 느꼈다.

물론 경청하여 듣지 않는다고 따로 문제점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어디서든 비슷하게나마 다 들어보고 들어볼 말들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새겨 넣을 훌륭할 말과 이야기들이었으며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이 자리에 모였으면서도 이런다는 사실을 보니 과연 우리 사회가 바르게 진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러 후보와 후보를 대신해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건데, 아무래도 후보가 대신해 온 사람들보다 말을 잘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후보 대변인들도 미리 할 말을 준비해 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후보의 차후 행보에 영향을 끼칠 말을 책임질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내뱉은 말이라도 어떻게도 넘기지 못하고 우야무야 넘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분명 나름의 준비를 하고 올 거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은 배가 됐다.

앞서 말한 사실이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고,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에 일이 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깔끔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보다 서울에 머물며 서울 구경을 하는 일이 보다 가치 있음을 알았고, 서울 구경을 하기로 했다.

서울을 다니며 느낀 점은, 사람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사회의 노예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길을 찾으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으나 사람들은 귀찮은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른다 말하는 게 다반사였으며, 사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그곳을 오고 가며 가장 인간적인 대화를 나눴던 기억은, 지하철에서 한 할아버지가 벌레를 죽이려 다리를 움직이시고 내가 다리를 움직여 벌레를 내쫓으니 할아버지께서 잘했다 하신 말씀이다.

그래도 궁궐과 박물관과 전시회를 다니며 서울 구경은 잘했고, 서울 구경을 하면서 서울이 처음부터 체계적인 계획 하에 이루어진 도시는 아니라도 나름대로의 미(美)와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를 들어, 궁궐 주위로 학교가 있고 성당도 있고 빌딩도 있었지만 지나가며 보는 주택과 아파트들은 건축가의 멋진 발상과 아이디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투표 참여 캠페인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했다. 투표 독려 팜플렛과 물티슈를 나눠주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받았다. 이는 여자는 귀찮은 일이 있으면 대충이라도 해결하려는 데에 비해 남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성향 때문인 듯했다. 또한 팜플렛을 받음으로서 물티슈라는 실익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실익을 무시하고 팜플렛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의 힘이 아무 이유 없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리저리 나눠줘도 받았다고 하거나 이미 투표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팜플렛과 물티슈가 적지 않게 남았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사전투표가 시행됐지만 나는 불행히도 참가하지 못했다. 사전투표 기간에 나는 서울에 있었고, 서울에서 나는 투표할 권한이 없기에 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자유롭게 대한민국 어디서든 투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선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시’나 ‘동’에 자유롭게 할 수 있지도 않겠는가?

이를 위해 어차피 주민등록증이 도용되는 경우도 있고 하니 주민등록증을 카드로 만들면 더욱 좋을 거란 생각도 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카드가 존재치 않는 사람은 없고, 나라에서도 카드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체크카드 형식으로 만들면 국민들의 카드에 저장 된 자금은 나라에서 보관하여 더욱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보다 나은 길을 모색해보고, 지금 이렇게 글로 쓴다.

이렇듯 나는 사전선거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전투표가 존재하는 까닭은 정해진 날짜에 따로 일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고려했기 때문이며, 투표를 실시하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6월 4일 수요일 아침 7시에 나는 투표장에서 투표를 하였다. 들어갈 때는 투표를 하러 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투표를 하고 나오니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나타나 나름 놀랐다.

저녁이 되어 투표율을 보니 투표율이 적은 걸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 가능한 인원만큼의 투표용지도 뽑고 할 텐데, 그럼 투표하지 않은 사람만큼의 투표용지는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게 아닌가?

나라에서도 쌀이나 생수와 같은 생필품이 남을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투표를 하면 이러한 넉넉히 남아있는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길을 가면서 선거일에 직장에 나오게 하는 건 위법이라는 플랜카드를 보았는데, 이렇게까지 배려해주는 데도 투표를 하지 않는 직장인은 휴가를 하루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주어진 권리를 위해 주는 혜택인데, 혜택만 이용하고 권리를 쟁취하지 않는 건 옳지 않은 일이 아닌가?

국가에서는 국민에게 권리와 의무를 주지만, 생각해보면 권리와 의무는 다르지 않다. 권리란 하면 유익한 것이니 하지 않으면 무익한 것이고, 하지 않으면 무익한 것은 하면 안 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의무란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지정한 일들인데 이러한 일들이 제 기능을 해야 사회가 유지되어 제대로 된 권리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사회는 바뀔 수 있고, 이러한 정신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의 차이가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며, 그러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 많은지 많지 않은지가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듯하다.